
1.
뉴턴은 추론과 계산으로 세상을 이해했다.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비판과 논쟁을 꺼려해서 자신의 연구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고 당시 인류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수학 지식을 소화하고 재발견해서 미적분법을 발견하게 되지만 역시 이 보물을 혼자서만 간직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는 세상과 떨어져 연금술에 몰두하기도 한다. 심지어 여인과 사랑을 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2.
쇼팽이 낭만주의자가 아니었듯이 무슨무슨 '주의(主義)' 가 늘 그렇듯이 뉴턴 역시 뉴턴주의자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탐구하고 집필하면서 그의 사고는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변화를 겪었지만 결국 미완성인 탐색들이었을 뿐 스스로 만족하는 완성은 없었다. 그는 물질과 공간을 신과 분리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 연금술에 매달렸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러운 신비주의 자연관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항상 질서를 추구하고 그에 의해 움직이는 자연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지만 자연의 무질서한 측면을 외면하지 못했다.
3.
어린 기숙학교 시절 해시계를 만들어서 15분대 근사치까지 측정했던 일은 유명하다. 해시계는 시간을 공간과 길이의 값으로 변환하여보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구의 타원 궤도와 기울어진 회전축 때문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값들은 보정되어야 한다. 관측을 통해서 태양의 천구에서의 위치가 항성에 비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8을 주욱 늘여서 놓은 듯한 완만한 곡선 궤도를 갖고 있다.어린 아이작은 왜 그런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패턴을 잘 알고 있었고 계절이 바뀔 떄마다 보정을 해 놓았다. 기숙학교가 있던 울스소프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알고 싶으면 아이작의 이 해시계를 보았다고 한다.
4.
어린 시절 그는 학문을 신에 대한 복무에 있어 가치있는 추구로서 강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긍지를 가질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열심히 습득했던 세상에 대한 비종교적인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실체'의 세계이다. 실체는 특성과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합쳐져서 form(형상)을 이루는데, 이 형상은 그 본질에 의해 좌우된다. 본성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운동(motion)이라고 부른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운동을 이해하면 세계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운동은 행동이고 변화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떄문에 시간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운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에 따른 위치의 변화만이 아닌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도 포함된다. 그리고 운동의 형상은 그 본질에서 비롯된다. 가벼운 물체는 위로,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운동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움직이고 있는 물체는 다른 물체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고 단언했는데, 여기서 mover(動者) 와 moved(彼動者)의 개념이 나왔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물체가 하나의 운동 형상에 대해서 이 두 성질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에서 최초의 first mover, prime mover 에 대한 개념의 유추를 가져왔고 그것은 '神'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잘 맞았다. 아마도 이런 것이 중세 시대에 The philosopher 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상을 갖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처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定性的인 운동개념은 양과 측정, 수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인들에게 지상 세계라는 것은 결함투성이에 지속하지 않는 것으로 무의미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하학과 수학은 질서정연하고 변치않는 천상을 기술하는 수단이었다.
뉴턴 역학의 중요한 두 전제중의 하나인 자연 법칙의 보편성과 불변성은 이 부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튼의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나타낸다. 자연 법칙은 우주 어느 곳에서나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연 법칙은 보편적이며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진화하지 않는다.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것이다.
5.
"Amicus Palto amicus Aristoteles magis amica veritas (플라톤은 내 친구이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내 친구이지만 진리가 더 훌륭한 내 친구이다"
뉴튼의 노트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그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때가 칼리지 2년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전의 권위를 무시하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적어나가기 시작했고, 항목을 정하고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항목들은 보통 독서나 사색을 통해서 얻은 질문들이었다. 이렇게 소박하게 시작한 그의 45개의 주제들은새로운 자연철학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그가 자문하고 자답하며 자료를 추가하고 확인하며 사고를 넓혀 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보통 글쓰기는 '완성' 으로 생각하지만 생각한 바를 정확하게 글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 다시 생각이 개입되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서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내곤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6.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가 미적분 개념을 만들기는 했지만 앞선 선배들의 연구와 뉴턴 자신의 끊임없는 질문에 의한 것이다. 뉴턴은 기본적으로 끈기 있는 독서가였다. 그가 수학을 습득하는 과정을 보자. 케임브리지는 영국의 최고 학부였지만 수학 과정이 개설된 것은 뉴턴이 수학하던 시기에 이르러서였다. 바로 1664년 아이작 배로(Isaac Barrow)가 수학교수로 임용되었고 비로소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Elements)』를 배울 수 있었다. 점성술에 관심이 있었던 뉴턴은 작도를 위해 삼각법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당시 케임브리지에서는 배로를 제외하고는 수학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뉴턴은 필사적으로 책을 구하고 공부하면서 당시 최신의 수학적 업적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데카르트의 『기하학(Geonerie)』라던가 오트레드의『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 월리스의『무한소수론(Arithmetica Infinitorum)』등을 구해서 읽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 시작하는 무서운 집념으로 하나하나 책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단순히 이해의 수준을 넘어 창조의 단계로 들어간다.
전염병의 창궐에 의해 케임브리지를 떠나 고향 집으로 돌아온 뉴턴은 책장을 만들고 서재를 꾸몄으며 계부에게서 물려받은 1천쪽에 달하는 비망록을 펼쳐 우선 자신이 읽으 책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뉴턴은 이 책을 낙서장 Waste Book 이라고 불렀다. 이 짧은 생각과 낙서들은 점차 독창적인 연구로 변모했다. 질문하고 끈질기게 그 질문에 파고들어 논리적인 계산을 통해 답을 구하고, 그에 따른 다른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불가피하게 세상과 동떨어져 지내고 있었지만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된다.
7.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식과 기술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 끊임없이 잊혀졌다가 다시 발견되기를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수학은 달랐다. 항상 변함없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뉴턴이 살던 유럽은 무척이나 특별한 공간이었다. 지식들은 단일 언어인 라틴어로 기술되었고 출판과 우편의 발달로 빠른 속도로 지식들이 공유되었다. 그때까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지식과 진리는 과거 황금기에 이미 완성되었으며 새로운 발견과 지식은 사라졌던 고대의 비밀을 발굴하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인류는 재발견이 아닌 전진의 시기를 맡게 되는 것이다.
뉴턴은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면서 언어와 기호에 대한 자각을 하게 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언어에 대한 연구는 필수불가결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언어라는 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실재'를 '기호' 형식으로 바꾸는 치환과 번역 행위였던 것이다. 그리고 '수학' 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효과적인 기호 번역이었다. 수학은 그 '답'에 대해서 중세식으로 대중적인 논쟁을 거쳐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고독한 그의 연구에서 '수학' 이야말로 특별한 것이었다. 이제 뉴튼은 『기하학원론』을 다시 되새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 준 것은 데카르트였다. 데카르트는 무슬림들에 의해 사용되고 파격적인 방법 때문에 야만적이라고 이야기되던 대수학(algebra)을 발전시켜 방정식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 방정식은 사고의 영역을 그리스 철학자들이 천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직선과 원, 원뿔의 개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일반 곡선의 세계로 이끌었다. 바로 Cartesian Co-ordinate 라는 좌표계의 도입으로, 미지수는 하나의 공간 차원을 가지고 두개의 미지수는 평면을 이루며 이 선분들은 대수학이라는 수단과 함께 다양한 곡선을 만들어 냈다. 뉴턴은 바로 이 가능성을 확장하고 일반화해서 시각화했다.
뉴턴은 '진리는 침묵과 명상의 산물' 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사물을 수학으로 기호화하여 공식화하여 표현하는 연구로 그의 낙서장을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첫새벽이 조금씩 밝아 와 충만하고 밝게 빛날때까지 문제를 놓고 계속 사색하고", 끊임없이 인내심을 갖고 끈질기게 계산했다.
8.
제대로된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던 1664년 그해 겨울, 뉴턴은 좌표축의 변환과 곡선 아래의 넓이를 구하기 위해 '무한급수'를 생각해 내어 다루는 데 익숙해졌고, 이를 통해 임의 미지수의 합의 거듭 제곱을 하는 '이항식 전개' 를 발견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를 통해 이미 알려진 특별한 몇 가지 경우를 보편화하는 일반화 능력을 보인다. '무한' 에 대한 사고의 전환은 데카르트가 이르지 못했던경지였다. 그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에 관한 논쟁을 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뉴턴에 의해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식별하고 측정하고 사용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뉴턴은 이에 대해서 무척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0보다 작지 않지만 어떤 유한한 양보다는 작인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무한소의 문제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극한'의 개념이다. 뉴턴은 갈릴레오 역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무한한 것과 나눌 수 없는 것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하학과 대수학의 결합을 위해 피할 수 없는 대면이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게 되자 뉴턴은 인정하고 사용하게 된다. 이 개념을 이용하여 곡선의 넓이는 곡선을 무한히 분할하고 그 분할을 무한히 더해서 넓이를 구하는 '적분법'을 창안하게 된다. 후에 이것을 '미적분' 이라고 부르게 된다.
9.
기하학과 대수학의 결합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운동의 문제를 기술하게 된 것이다. 곡선은 움직이는 물체의 경로를, 해당 위치에서 경로의 기울기 즉 접선은 운동이 일어나는 순간의 방향을 나타낸다. 면적은 평먼을 가로질러가는 선에 의해 생성된다. 그 곡선, 길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운동을 생각하는 것과 바로 연결된다. 뉴턴은 이제 운동의 기술을 위한 '시간' 과 '속도' 에대한 개념과 그 측정을 위한 정밀함에 대한 야망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기하학과 대수학에 대한 공부와 낙서로부터 출발한 그의 독창적인 연구가 물체의 운동에 대한 역학(mechanics)에 이르게 된다. 그가 역학적인 곡선을 그려낸 것은 무한급수를 고안해낸 1년후의 일로 1665년 가을이다. 뉴턴은 곡선 상에서 무한소의 거리만큼 떨어진 점들 사이의 '관계'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접선을 찾았다. 이 방법을 확장해서 곡률의 중심과 반지름을 발견하면서 곡률의 비율을 量化하는데 성공한다. 곡률의 측정은 변화율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실 변화율(Rate of Change)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추상화의 산물이지만, 그것이 미적분이라는 수학적 방법의 발견과 사용으로 실제로 '측정' 하고 '예측' 할 수 있는 실재적인 것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도 결합된다. 속도와 면적이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10.
이제 그에게 세상은 불연속적인 우주가 되었다. 작지만 궁극적으로 나뉘어지지 않는 원자를 믿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수학은 연속적인 수학이다. 물질은 더이상 나뉘지 않는 원자로 환원될 것이고, 자연은 수학으로 환원되었다. 공간은 차원과 크기를 갖게 되었고, 운동은 기하학에 복속되었다. 세상은 질서정연한 풍경 속에 움직이고, 그 안의 거주자들은 패턴, 과정,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뉴턴 역학의 전제인 독립적 객관성이 나온다. 관측과 관련된 모든 것은 관측과 무관한 것에 의해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로 다시 돌아가 보자. 형상은 특성과 본성을 갖고 있다. 시공간적인 크기를 갖는 물질은 그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양적인 변화는 수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나타내는 속성은 질량(mass)과 운동(motion)이다. 그리고 물질의 속성인 질량은 속도의 상대 비례로 얻어진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물질에 대해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물질의 속성을 얻어내어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실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내어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보편 법칙이 필요한 것이다. 이 법칙이 보편적이라는 것이 뉴턴에 의해 찾아지고 '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는 실재하는 물질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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