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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red Spirits(다음엇지)
모아쉬고, 흩어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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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載瑞, 石田耕造 by 다음엇지

최재서(崔載瑞) 또는 이시다 쿄조(石田耕造). 김윤식 선생의 여름특강 '최재서와 『국민문학』지에 대하여' 소식을 접하고는 매일 저녁 기흥에서 남산까지의 먼 여정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데꺽 신청해 버렸다. 나름대로 탄탄한 이론적 기반으로 접근해서 자신의 분야에서 진지하게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변절은 나의 오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母블로그에 '재즈송'에서 비롯된 한국 재즈에 대한 포스팅을 틈틈이 하고 있지만 1930년대는 우리나라가 소위 말하는 '近代'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최재서가 비평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중반 무렵이다. 이미 국권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더군다나 일본의 국력이 가장 막강하던 시절로 독일, 이태리와 함께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세계사의 전방에 나서던 시기이다. 국내적으로는 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가 해체되고 문단에서는 공황상태를 맞이했던 시절이다. 문예비평사에 있어서는 '轉形期' 로 표현하던데 흔히 '프로문학이 퇴조하고 새로운 시대의 중심 사상을 모색하던 主潮 탐색의 시기' 라고 한다.

이때 문예비평을 주도해 나가게 되는 것이 최재서다. 그는 이런 내외정세는 과도기적인 혼돈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摸索批評'이 중심이되는 양상을 전개한다. 식민지에서 일본적인 것들을 전파하는 중심이 되는 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浪漫主義 시에 대한 연구와 정신에서 출발한 그의 경력은 정 반대 지점에 있는 主知主義 문학론의 지점에서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하고 그에 기반한 비평 활동을 통해서 30년대의 평단을 주도했다. 혼돈상태의 극복은 지성과 모럴이 대안이라고 보았고 그것이 문학에 접목되면 풍자문학이 된다고 보았다. 이렇게 큰 줄기를 세우고 문단의 방향을 제시하고 주도했던 업적은 지대해서 지금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이 더 견디지 못하고 절망하고 변절했던 1940년대. 그도 역시 한계에 봉착했는지 일제에 영합하면서『國民文學』誌를 통한 황국의 충복이 된다. 그의 이런 파멸에 가까운 충격적인 변절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분석들이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이론적인 기반에 한계가 있었던지 아니면 개인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天皇歸一 이니 八紘一宇 같은 속이 뻔히 보이는 날조된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 기억이 맞다면 김윤식 선생은 최재서의 경우는 개인의 문제로 다루었었다. 변절하여 친일을 하게 되었던 지식인들의 행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역사의식의 어떠했는지 그 전향은 자신의 이론과 배경의 기반하고 진지한 고민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이광수 같은 경우는 選民意識의 발로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 라고 할까나. 하지만 최재서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탄탄한 이론과 문학론으로 단련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일에 대한 근거는 논리가 아닌 단순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금후 일본 문학에서 한편 그 순수화의 도를 더욱 높임과 동시에 다른 한편 그 확대의 범위를 더욱 넓힐 것이다. 전자는 전통의 유지와 국체의 명징에 이어지는 일면이요, 후자는 이민족의 포섭과 세계 신질서와에 이어지는 일면이다. 전자는 천황귀일(天皇歸一)의 경향, 후자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나타남이다.

《조선문학(朝鮮文學)의 현단계(現段階)》, 최재서

그의 고민을 옅볼 수 있다는 위의 글에서 그가 내세우는 논거는 天皇歸一, 八紘一宇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찜찜한 구석이 많다. 분명히 그의 지성론, 모럴론, 풍자문학론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로인해 전향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제에 맞서서 싸우는 사람들은 삶의 보람을 되찾고 인간으로서의 요구를 확인하는 대결의 문학을 창조하고 있는데,지성인으로 자처한 최재서는 인식 능력의 한계 때문에도 자기대로의 좌절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현대가 혼돈한 시대라고 하는 명제를 찾아 합리화하는 구실을 찾았던 것 ’이며 따라서 ‘혼돈을 수용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 ’에 불과한 것이다

조동일,「최재서」,『한국문학 사상사 시론』, 지식산업사, 1978

그가 이론의 근거로 삼고 있는 '混沌' 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한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인식의 기저에는 '실망', '허무', '무가치관' 같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고 그것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혼돈 극복' 의 근거로 삼았던 주지주의는 知性 과 Moral 에 근거를 하고 있지만,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추상과 관념적인 넋두리에 불과했을 뿐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비애감이 또한 그의 한계 였을 것이다. 그나마 그가 내세웠던 행동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풍자 문학론은 과연 위기 극복의 초석이 되었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에 이것이 그 시대를 아우를 수 있는 쟝르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식민지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자아풍자에 봉착하여 또다시 허무와 회의의 혼돈 상태로 돌아감에 따라 다시 추상적인 이론만으로 머무는 데 그쳤다. 이것이 결국 거대한 현실에 부딪혀 극복한 논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힘에 눌려 친일부역문학에 종사하게 하는 오점을 남기게 했을 것이다.

과연 현재는 그때와 달리 우리가 탄탄한 세계관과 문학관을 딛고 서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 것' 이라고 부를 만한 문화가 무엇이 있고 남아 있는지 대답하기가 내 스스로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남아 있는 것들은 부숴지고 사라져 간다. 내가 이번 강의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록 실패했다 하더라도 혼돈의 상황에서 자신의 인식체계를 세우고자 했던 최재서에 비해 지금의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인식체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인식충동이 인식체계를 세우는 데 실패했을 때 우리는 다시 최재서의 오판을 따라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인들의 끊임없는 서구지향성은 아직도 우리가 우리만의 보편근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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