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두시간 남짓 있으면 14년간의 기다림과 8조원의 돈이 투입된 거대 강입자 충돌장지(LHC, Large Hardron Collider)가 양성자 빔을 쏘아올린다. 27km 길이의 링을 처음으로 한바퀴 완전히 돌게 된다. 예상 lap time은 90 microseconds 다. 이렇게 되면 거대한 LHC 모든 구역의 점검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실제 충돌 실험을 하는 것은 이번 가을이라고 한다. 물론 종말론자들이 바라 마지않는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하긴 지난 몇년 동안 LHC의 실체가 드러나고 알려지면서 이런 저런 상상력의 소재가 되어 오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스토리로는 일본 SF 만화의 대가 星野之宣(호시노 유키노부)의 <ムーン・ロスト>가 대표작이겠다. 바로 LHC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 지구를 갑자기 덮친 소행성을 처리하기 위해서 영화 아마겟돈에서처럼 폭탄을 들고 소행성으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미니 블랙홀을 소행성으로 쏘아서 소행성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는 세련된(?)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블랙홀이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위치해 자라나면서 드디어 달을 잡아먹는다. 다행히 지구는 무사하지만 어쨌든 그런 세계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실은 며칠 전에 점심을 하면서 어제 오늘 예정되어 있던 9월 위기설 관련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오늘 가동이 시작되는 LHC 이야기를 하는 실수를 범했다. 진땀을 흘리면서 잠시 설명하다가 하루하루 바둥바둥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이런 과학적인 이벤트와 괴리되어 있는지를 다시 절감해야만 했다. 들떠있는 나만 바보가 되었다 천문학적인 돈이 지구촌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충당되었고 85개국 만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거대한 국제과학기술협력 사업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데?..."
사실 거창하게 말했을 뿐 LHC는 단지 "가속기" 이다. 우리가 서로 2개의 야구공을 던져서 충돌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한군데 모을 수 있고 4개의 거대한 검출기가 건설되었다. 단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양성자 사이의 충돌을 연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입자를 서로 충돌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입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100년전 러더포드가 이 방법으로 원자의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한 이후 물리학자들은 가속기를 만들고 입자들을 더 더 높은 에너지로 충돌시켜서 물질의 더 깊은 곳을 탐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에너지를 받은 양성자는 빛의 99.999999%로 운동하게 되고 상대성 원리에 의해 정지했을 때보다 1만 4천배 이상의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쿼크들이 충돌하게 되면 산산조각이 나면서 파편들과 에너지가 우리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형태의 입자로 변환되어 나타날 것이다. 이정도 에너지는 빅뱅 이론에서 빅뱅 초기의 상태를 재현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완성되어 온 표준이론(Standard Theory)를 넘어선 물리학의 단초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표준모형은 거의 대부분의 물리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해내고 있지만 최종이론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표준이론을 넘어서는 첫걸음이 LHC가 될 것이다. 수학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는 끈이론의 단초들이 과연 LHC에서 밝혀진 것인지 즉 여분의 차원에 대한 증거가 제시될 것인지 또한 블랙홀이 만들어 지게 된다면 어떻게 이를 알아낼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 계속 논의되어 왔다. 왜냐하면 여분의 차원을 들여다보는 도구로서 미니 블랙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블랙홀이 만들어질 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우리가 관측해 온 블랙홀은 태양질량보다 훨씬 큰 질량의 천체가 진화되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뱅이론에서는 가능하다. 즉 작은 질량의 블랙홀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빅뱅 초기에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시공의 요동이 매우 큰 지점에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홀 최소 질량은 GeV로 생각되어 왔었는데 정상적인 차원에서는 1000광년 지름의 입자가속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차원이 6개가 있고 그 차원의 길이가 수 fermi 정도의 크기라면 TeV 정도의 에너지에서도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LHC는 올해 충돌 중심 에너지를 10TeV로 웜업을 해서 내년 3월에는 14TeV까지 에너지를 높여갈 계획이다. 이 미니 블랙홀은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블랙홀과는 다른데 양자중력효과도 없을 뿐더러 호킹에 의하면 질량에 반비례하는 온도를 계산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사건지평의 면적에 비례하는 엔트로피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명이 무척이나 짧다. 호킹 복사를 하면서 블랙홀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1초에 하나씩 블랙홀이 만들어 질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호킹 이론이 틀리다면 종말론자들의 주장대로 2012년이면 지구가 완전히 블랙홀에 잡아 먹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LHC에서 블랙홀이 만들어 진다면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블랙홀이 수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우주선(cosmic ray) 중에는 상상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것들도 많다. 지구가 블랙홀에 먹히지 않고 멀쩡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은 호킹 계산이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자연에서 미니 블랙홀이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LHC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LHC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리학자들에게 도대체 왜 LHC 같은 머니 블랙홀을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거의 전부 "Higgs" 라고 대답할 것이다. 힉스(Higgs)는 다른 입자들의 "질량"의 기원이 되는 입자로 이것이 발견되면 표준 이론은 완성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위에 말했던 여분차원의 발견과 블랙홀의 생성은 왜 다른 힘에 비해서 중력이 그렇게 약한지를 설명해 줄 것이고 우주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를 밝혀줄 단초 또한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발견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은 SUSY 수퍼 대칭이기도 하다. 초입자는 이미 존재하는데 질량이 양성자의 1000배 정도로 너무 커서 발견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전자가 발견된 것이 1898년인데 그의 짝이 되는 전자의 초입자가 과연 올해 발견될지 기대된다. 사실 이 초입자 중 몇몇이 암흑물질의 실체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한다.
물론 아무일도 없을 수 있다. 힉스도 초대칭도 새로운 입자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 온 것이 틀린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간단히 정리해 본 경우의 수는 아래와 같다.
우선 표준 모델의 입장에서는 아래와 같다.
[ 표준 모델이 유지되는 경우 ]
1. 힉스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입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 표준모델의 완성(?).... 끝... 어찌보면 최악의 시나리오.
2. 힉스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입자들이 계속 등장한다.
: 표준모델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입자들로 이론은 보완되어야 한다.
[ 표준 모델을 폐기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 ]
3. 힉스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보는 입자들이 등장한다.
: 새로운 물리학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20세기 초반처럼 이 현상들의 규명을 위한 엄청난 투자와 새로운 이론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세상을 뒤흔드는 난세(?)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물리학자들에게는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나날이 될 듯.
4. LHC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사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준 모델을 폐기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서 표준모델의 수정이나 전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실험이나 데이타의 도움이 없는 이론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지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물리학의 시대가 열리게 될 지 모르겠다. 새로운 조각없이 기존의 조각들로 전혀 다른 모양의 그럴듯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 힉스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입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 표준모델의 완성(?).... 끝... 어찌보면 최악의 시나리오.
2. 힉스가 발견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입자들이 계속 등장한다.
: 표준모델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입자들로 이론은 보완되어야 한다.
[ 표준 모델을 폐기하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경우 ]
3. 힉스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보는 입자들이 등장한다.
: 새로운 물리학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20세기 초반처럼 이 현상들의 규명을 위한 엄청난 투자와 새로운 이론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세상을 뒤흔드는 난세(?)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물리학자들에게는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나날이 될 듯.
4. LHC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사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준 모델을 폐기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서 표준모델의 수정이나 전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실험이나 데이타의 도움이 없는 이론이 과연 가능할지 모르지만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물리학의 시대가 열리게 될 지 모르겠다. 새로운 조각없이 기존의 조각들로 전혀 다른 모양의 그럴듯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끈 이론의 차원에서는 블랙홀등의 지표를 통해 여분의 차원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끈이론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날 신문과 TV에서 "공간의 다른 차원이 발견되었습니다!" 라고 떠들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지금까지의 물리학과 철학의 개념이 뒤집히는 사건이 된다. '환원론의 종말' 이랄까? 그간의 철학과 물리학은 현상과 물질의 '근원'을 탐구해 왔다. 그래서 물질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시대 마다 가능한 만큼 물질을 쪼개왔던 것이다. 지금의 가장 작은 구성물은 쿼크이다. 이런 기본 단위들의 물질들과 상호작용으로 조합되어 우리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 표준이론이며 그 근본에는 환원론적인 철학이 기반에 있다. 그런데 더 큰 에너지로 충돌을 시켰는데 더 작은 입자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이 나와 버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튼 왜 그 수많은 나라가 수많은 과학자들과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를 하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코 LHC는 우리와 상관없는 강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한 100년쯤 지난 후에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될 지 상상해 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렇게 앞으로 몇년 간 스위스에서 전해 올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아래는 LHC 와 함께 화제가 된 브라이언 콕스의 유명한 TED 강연이다. 알기쉽게 유머를 섞어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태그 : L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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