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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dred Spirits(다음엇지)
모아쉬고, 흩어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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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의식의 탐구 by 다음엇지

"제발 말씀해 주시겠어요?" 앨리스는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이제야 생각이 있는 아이처럼 말하는구나." 라고 말하는 험프티 덤프티는 아주 흡족해 보였다. "불가해"라는 말은 우리가 그 주제에 관해서 알 것은 다 알았다는 뜻이지. 네가 다음에 뭘 할 생각인지를 말하려고 한다면, 지금이 딱 좋은 때일거야. 여기 머물러서 남은 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Through the Looking Glass>


만물의 웅장한 설계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은 무엇으로 귀결될까? 의식에 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의미, 동물 실험, 자유 의지, 기계 자각의 가능성 따위의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기자 : 처음부터 시작하죠. 이 문제와 씨름하는 전체적인 전략은 무엇인가요?
코흐 : 첫째, 나는 의식을 설명되어야 하는 엄연한 사실로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1인칭 관점, 느낌, 감각질, 자각, 현상적 경험들 - 당신이 뭐라고 부르든 - 은 어떤 특정한 뇌 과정에서 비롯되는 실제 현상들입니다. 그것들은, 태평양을 뒤덮는 붉은 황혼, 장미의 향기, 학대받는 동물을 보았을 때 솟구치는 분노, TV 생중계를 지켜 본 우주 왕복선 챌린저 호 폭발의 기억과 같은, 의식적인 삶의 풍경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물리적 체계만으로 어떻게 그러한 주관적 상태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우주를 이해하는 과학의 능력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당분간 철학자들이 논쟁하는 어려운 문제들 - 특히 보고 듣고 나로 존재하는 느낌이 왜 무언가처럼 느껴지는가 하는 질문 - 은 젖혀두고, 의식의 분자적이고 신경적인 상관물(NCC)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주력합니다. 내가 초점을 두는 질문은 합해졌을 때 특정한 의식적 지각체나 경험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신경적 기제나 사건들의 최소 집합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뇌 과학자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놀라운 기술들 - 포유류의 게놈 조작, 원숭이에게서 수백 개의 뉴런을 동시에 기록하는 기술, 살아있는 인간 뇌의 영상을 얻는 기술 - 덕분에 의식의 신경 상관물, 즉, NCC의 학문은 실제로 다룰 수 있고 분명하게 정의되므로, 일치단결된 과학의 공격에 굴복할 것입니다.

기자 : 그렇다면 NCC를 발견하면 의식의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란 뜻인가요?
코흐 : 그건 정말이지 절대로 아닙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매우 복잡한 생물학적 부분들이 왜, 어떤 환경에서 주관적인 경험을 일으키느냐와, 왜 이러한 경험들이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느냐에 관한 원리적인 설명입니다. 지난 2천년에 걸쳐 온갖 곳에 이러한 수수께끼들을 풀려는 시도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이 분자 복제에 관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밝혀주었는지를 기억하시겠죠? 약한 수소 결합으로 되어 있는 당, 인산, 아민 염기들의 상보적인 두 사슬이, 유전 정보가 표현되고 복사되고, 다음 세대로 물려지는 메커니즘을 즉시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DNA 분자의 구조는 이전 세대의 화학자나 생물학자들이 결코 접근할 수 없었던, 유전을 이해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의식적 지각체를 매개하는 뉴런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것이 투사되고 입력을 받는 장소가 어디인지, 점화 패턴은 어떠하고, 태어나서 성장할 때까지 발달 계보는 어떠한지 등을 안다면, 완전한 의식의 이론을 향해 가는 유사한 돌파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기자 : 꿈같은 이야기로군요.
코흐: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의식을 이해하는 데 NCC를 찾는 것만큼 믿을만한 방법은 없습니다. 지난 2세기 동안 학자들이 집착해 온 논리적 논쟁이나 내적 성찰 방법이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것은, 겪어서 알고 있습니다. 생각으로 의식을 설명할 길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안일한 방법으로 진실을 밝히는 데 성공하기엔, 뇌는 너무 복잡하고 진화 역사상이 너무나 많은 무작위적 사건들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그 대신 구체적인 사실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뉴런들 간 축색돌기들로 짜인 직물작품은 얼마나 선택적일까? 동기화된 발화가 의식의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까? 피질과 시상을 종횡무진 하는 피드백 경로들은 얼마나 중요할까? NCC의 바탕이 되는 특별한 신경 세포 유형이 있을까? 하는 것들이죠.

기자 : 그렇다면 의식의 과학적 이론에 관한 교수님의 탐구에서 철학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코흐 : 역사적으로 철학은, 그것이 우주의 근원과 진화이든, 생명의 근원이든, 마음의 인상적인 대답을 남긴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격식을 차린 학술적 모임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보통 고려하지 않는 관점에서 개념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는 뛰어납니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 대 쉬운 문제, 현상적 의식 대 정보접근 의식, 의식의 내용 대 의식 그 자체, 의식의 단일성, 의식이 일어나는 원인 조건과 같은 개념들은, 과학자들이 좀 더 자주 생각해 보아야 할 매혹적인 쟁점들입니다. 따라서 철학자들이 제시한 질문에는 귀를 기울이더라도, 그들이 제시하는 대답에 현혹되지는 마십시오. 철학자의 좀비를 적절한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 좀비요? 팔을 앞으로 뻗고 걸어 다니는, 저주받은 시체 말인가요?
코흐 : 글쎄요. 그건 아니겠죠. 기자분이나 나와 같은 사람이지만 의식적 느낌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데이비드 차머스 등의 철학자들은 이렇듯 영혼이 없는 가공의 존재를 이용하여, 의식은 우주의 물리적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에 관한 지식은 경험이 어떻게 왜 우주에 등장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뭔가가 더 요구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철저한 가상의 좀비는 내게 그다지 쓸만한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좀 더 온건하고 제한적인 변종이 있기는 합니다. 따라서 프랜시스와 나는 이 눈길을 끄는용어들, 단독으로 의식적인 감각을 일으키기에 불충분한, 급속하고 정형화된 감각운동 행동의 집합으로 선택했습니다. 고전적인 예가 운동조정입니다. 우리는 길을 따라 달리고 싶으면 "그냥 그렇게 합니다." 고유 감각, 뉴런, 근골격계가 나머지를 알아서 하고, 우리는 그냥 길을 갑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면 투명한 벽에 부닥칩니다. 의식은 그토록 간단해 보이는 행동의 밑바탕이 되는 놀랍도록 복잡한 일련의 계산과 작용들에 접근할 길이 없습니다.

기자 : 그렇다면 좀비의 행동이란 단지 좀 더 복잡할 뿐인 반사작용인가요?
코흐 : 그렇습니다. 피질 반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팔을 뻗고 자동적으로 손을 벌려 컵을 잡는 행동은, 팔과 손을 조절하는 데 시각적인 입력이 필요한 좀비 활동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매일같이 수천 번씩 실행합니다. 물론 우리는 컵을 '볼 수" 잇지만, 그것은 단지 다른 체계에 속한 신경 활동이 그러한 의식적 지각체를 맡고 있기 대문입니다.

기자 :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들 안에 무의식적 좀비 체계와 의식적 체계가 공존한다는 뜻이로군요.
코흐 : 그렇습니다. 일상적인 행동에서 놀랄 만큼 많은 부분이 좀비와 같은 행동입니다. 당신은 자동조종장치라도 켠 듯이 운전해서 출근하고, 눈을 움직이고, 이를 닦고, 신발 끈을 매고, 복도에서 동료에게 인사를 건네고, 그 밖에도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기타 자질구레한 수많은 일들을 수행합니다. 암벽 등반, 무용, 무술, 테니스와 같이 사전에 충분히 잘 훈련된 행동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생각이 없을 때 가장 훌륭하게 수행됩니다. 어떤 한 동작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면 그것은 순조로운 수행을 방해하게 됩니다.

기자 : 그렇다면 도대체 의식은 왜 필요한가요? 어째서 우리는 그냥 좀비가 될 수 없었을까요?
코흐 : 글쎄요. 우리가 왜 좀비가 될 수 없었는지 논리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 감각도 없다면 삶이 아주 지루해지겠죠(물론 좀비로서의 우리는 어떤 권태도 느끼지 않겠지만), 그러나 진화는 지구상에서 다른 편을 택했습니다.

어떤 간단한 생물들은 한 묶음의 좀비 작동체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이 달팽이라든가 회충이라든가 하는 느낌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히도 아주 많은 입력 감각과 출력 작동체를 가진 유기체라면, 다시 말해서 포유류라면, 가능한 모든 입출력 조합에 일일이 좀비 체계를 갖다 바치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두개골 안에 너무나 많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진화는 대신에 다른 경로를 선택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처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을 주로 책임지는 강력하고 유연한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NCC는 주위 환경의 선택적인 측면들 - 우리가 현재 자각하고 있는 - 을 함축적인 방식으로 표상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일종의 즉각 기억의 도움으로 뇌의 계획 단계들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자각하고 있는 내용은 컴퓨터 용어에서 CPU 상의 캐시기억장치의 상태에 해당합니다. 우리의 의식이 시각적 지각체에서 기억장치를 거쳐 바깥의 목소리까지 출렁거리며 흘러다니는 것처럼, 캐시의 내용물도 그렇게 물결쳐가지요.

기자 : 그렇군요. 따라서 의식의 기능은, 그것을 위해 아무런 자동적 절차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군요. 그럴듯하게 들리네요. 그렇지만 이것이 어째서 주관적인 느낌을 동반해야 하죠?
코흐 : 네,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은 확립된 해답이 없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저러한 답들이 있어도 어느 것 하나 설득력이 있거나 널리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랜시스와 나는, 의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 단어의 의미처럼 말인가요?
코흐 : 아니요. 언어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깥세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들은 의미 없는 상징들이 아니라 풍부한 관련성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고급 도자기 잔의 푸른 색조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그 잔ㅇ르 잡고 그 안에 차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땅에 떨어진다면 그것을 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연상들은 명시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평생 동안의 경험을 통해 세상과 무수히 감각운동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형성됩니다. 이 모호한 의미는, 도자기 잔을 표상하는 뉴런들과 다른 개념과 기억을 표현하는 뉴런들 간에 일어나는 모든 시냅스 상호작용의 총합에 해당됩니다. 모든 다양한 정보가 잔이라는 지각체와 관련된 감각질에 의해서 간단한 방식으로 기호화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일단 미루어 두고, 수백년 동안 입증되지 않은 가설들에 시달려 온 이 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프란시스와 나의 체계가 의식을 검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입니다. 좀비 작동체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작동하므로, 단기 기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민 손을 보고, 그 때문에 자신의 손을 뻗어서 악수를 합니다. 그렇지만 좀비는 손을 보는 것과 운동 행위 간의 시간 지연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처리하도록 진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더 느릴지는 몰라도 더욱 강력한 의식 체계가 넘겨받아야겠지요.

이렇듯 다른 행동들로부터 동물이나 아기 또는 자신의 경험을 쉽게 전달할 수 없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간편한 의식 검사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유기체로 하여금 몇 초의 지연 후에, 예를 들어 본능적 행동을 방해하는 선택을 하게 합니다. 만일 그 생명체가 강도 높은 학습 없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는 계획 모듈을 사용하는 것이 틀림없고, 최소한 인간의 계획 모듈은 의식과 가까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의 바탕을 이루는 NCC가 어떤 외적 수단에 의해서 파괴되면(또는 한동안 작동할 수 없게 되면), 지연된 반응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 아주 엄밀한 것은 아니군요.
코흐 : 이 지점에서 공식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1950년대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요. 분자생물학자들이 유전자의 정확한 의미를 가지고 노심초사했다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이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지능 대신에 의식을 염두에 둔 일종의 튜링 테스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몽유병자, 원숭이, 생쥐, 파리에게 적용하기에는 충분히 훌륭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자 : 잠깐만요, 곤충도 의식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씀인가요?
코흐 : 많은 학자들은, 의식을 위해서는 내성의 기초로서 언어와 자기표현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음을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는 먼 옛날에 진화된 좀 더 기본적인 생물학적 현상의 최근 역작일 뿐입니다.

의식은 아주 기본적인 느낌들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색을 보거나 통증을 느낍니다. 이런 감각들에 어째서 언어나 고차원적인 자아 개념이 필요합니까? 심한 자폐아나 과대망상잉나 이인증(depersonalization syndrome;익숙했던 외부 작그이나 자신의 신체가 갑자기 생소해지는 상태) 환자라도, 기본적인 지각적 자각, 즉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각적 의식, 즉 제가 연구하는 유형의 의식이 언어 이전에 기원한다면, 그것이 진화의 사다리에서 얼마나 아래까지 뻗어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어떤 지점에서 원형-NCC가 처음으로 나타났을 까요? 포유류들 간에 가까운 진화의 관계와 그들이 가진 뇌의 구조적 유사성을 볼 때, 나는 원숭이, 개, 고양이들도 그들이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대상을 자각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생물학이나 의학 실험실에서 가장 인기있는 포유류인 생쥐는 어떤가요?
코흐 : 쥐는 게놈을 조작하고 새로운 유전자를 주입하거나 기존 유전자에 타격을 주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에 반좀비(anti-zombie_ 지연 검사를 어느 정도 현실적인 방식으로 쥐에게 적용하면, 분자신경과학자들이 NCC의 기초를 연구하는 데 강력한 모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실험실을 비롯한 다른 실험실에서도 고전적인 파블로프식 조건화를 사용해서 그러한 쥐의 주의와 자각 모형을 갭라하고 있습니다.

기자 : 잠깐만요. 어째서 '의식(Concensiousness)' 가 아니라 자각(awareness)' 이라고 하시는 거죠? 그 둘이 다른 개념을 가리키나요?
코흐 :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습에 가깝습니다. 의식-C 자로 시작되는 불경한 단어-을 보면 어떤 친구들은 질겁하기 때문에 보조금을 신청하거나 논문을 제출하 ㄹ떄는 뭔가 다른 단어를 쓰는 편이 낫습니다. '자각'은 대게 레이더망을 약간 벗어나지요.

동물의 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사실 말이지 어쨰서 쥐나 포유류에서 멈추어야 합니까? 어쨰서 하필 피질 우월주의인거죠? 우리는 정말로 대뇌 피질과 그것을 둘러싼 부속기관들이 지각적 의식에 필수적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띾요? 오징어는 왜 안되죠? 아니면 벌은요? 백만 개의 뉴련을 하사받은 벌들은 시각적 패턴을 짝짓는 놀라운 묘기를 포함한 복잡한 행동들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수십 만 개의 뉴런만 가지고 보면, 냄새 맡고 통증을 느끼는데(!) 충분할 겁니다. 초파리조차도 아주 약간은 의식이 있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기자 : 제게는 입증되지 않은 추측으로 들리는군요.
코흐 : 지금으로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생리와 행동 실험들은 이러한 추측들을 경험적인 영역으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시도입니다. 우리는 최근까지 그러한 리트머스 시험에 관해 생각해 볼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기자 : 이런 시험이, 기계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평가하는 데 적용될 수 있을까요?
코흐 : 나는 칼텍의 생물학 교수진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공학과 응용과학과의 교수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경생물학에서 유추한 인공 의식에 관해서도 물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능을 넘어서는 행동을 할 수 있고 상징들의 의미를 표현하는 어떤 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유기체라도 지각력이 있다는 판정의 후보가 됩니다.

인터넷을 하나의 전체로 볼 때 그것은 창발적 계의 흥미로운 한 예로서,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고도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그물망에서 수백만 대의 컴퓨터가 접속점들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수의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파일 교환 프로그램이나, 수학적 난제를 수천 대의 기계에 분산시켜 해결하는 알고리즘도 존재하는 반면, 이러한 조립물들은 뇌 안에서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하는 뉴런의 연합체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전체적인 월드와이드웹에는 이렇다할 총체적 행동도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로 설계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의도적인 대규모 행동은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런 행동 -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력 배분을 지시하거나, 항공 교통을 통제하거나, 경제 시장을 조작함으로써 - 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의식이 있는 웹이란 어불성설입니다. 자율적인 컴퓨터 바이러스나 웜의 등장으로 인해 미래는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기자 : 전반적인 계획 모듈에 추가해서 반사와 유사한 행동 - 장애물을 피하고, 전지 방전을 예방하고, 다른 로봇과 교신을 하는 등 - 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어떤가요? 그것들은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코흐 : 글쎄요., 계획 모듈이 충분히 강력해서, 그계 자신의 몸체를 포함한 현재의 감각적 환경과 그것의 기억은행에서 검색한 현 상황에 적절한 어떤 정보를 표상함으로써, 그것이 독립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나아가, 그 로봇이 감각적인 사건들을 긍정적 부정적 목표 상태와 연관 짓는 방법을 학습해서 자신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예를 들어 주위 온도가 높아지면 기계의 전원은 차단될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은 무언가인 것입니다. 올라간 온도는 더 이상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 유기체의 안녕에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니까요. 그런 로봇이라면 어느 수준의 원형의식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 : 의미의 아주 윈시적인 개념처럼 보이는군요.
코흐 :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기쁨과 아픔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나올만한 다른 출처들은 있습니다. 로봇이 누가 감독하지 않는 학습 알고리즘에 의해서 감각운동 표상을 확립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로봇은 주변 세상을 더듬어 나가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학습할 것입니다. 동시에, 둘 이상의 감각 양상에서 오는 정보를 비교함으로써 좀 더 추상적인 표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예를 들어, 입술의 움직임과 특별한 스타카토 소리 패턴은 종종 붙어 다닌다든가). 명시적 표상이 많을수록, 어떤 한 가지 개념은 의미가 깊어집니다.

기계 설계자들이 로봇을 위해서 아동의 발달 국면들을 복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의미들을 확립하는 가장 쉬운 길이 될 것입니다.

기자 : 마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편집증적 컴퓨터 할(HAL) 같군요! 그렇지만 아직 제가 먼저 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어요. 교수님의 지연 시험이 진짜 의식이 있는 기계와 단지 의식이 있는 척하는 가짜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코흐 : 이 시험이 생물체에서 반사 체계를 의식 체계와 구분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계에서도 그러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의식한다. 그러므로 다른 유기체가 나와 더 유사할 수록 그것은 느낌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다면, 최소한 몇몇 동물 종에게는 인간과의 진화적, 행동적, 구조적 유사성을 이유로 지각력을 부여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렇지만 설계와 근원과 형태가 근본적으로 다른 기계 앞에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기자 : 이 주제는 접어두고 이전에 말씀하신 의식의 신경 상관물이라는 개념을 살펴 보도록 하지요. 교수님과 크릭 박사님이 제안한 것은 무엇인가요?
코흐 : 그 주제에 관해 1990년에 발표한 첫 논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형태의 의식은 여러 피질 영역에 걸친 신경 활동의 역동적 결합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내놓았습니다.

기자 : 잠깐, 잠깐만요. 결합이라니요?
코흐 : 빨간 페라리 한 대가 붕 소리를 내면서 지나간다고 합시다. 이것은 뇌 전체에 걸쳐 있는 수많은 위치에서 신경 활동을 유발하지만, 우리는 차 모양을 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내면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 단 하나의 빨간 물체를 봅니다. 통합된 지각체는 운동을 부호화하는 뉴련과 빨간색을 표상하는 뉴런, 형태와 소리를 부호화하는 다른 뉴런들의 활동을 조합해야 합니다. 같은 순간에, 개를 데리고 지나가는 행인도 눈에 띄입니다. 이 역시 페라리를 위한 표상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고 신경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1990년 논문을 낼 당시, 각각 볼프 징어와 라인하르트 에크호른이 이끄는 독일의 두 연구집단에서도, 고양이의 시각피질 뉴런들이 어떤 조건에서는 동기화된 방전 패턴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종종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유명한 40Hz 진동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의식의 신경적 징후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자 : 그 증거가 지금은 어때 보이나요?
코흐 : 진동과 동기화라는 주제에 관해서 신경과학계는 여전히 심각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어떤 학술지가 진동과 동기화의 기능적 관련성을 옹호하는 즐거를 발표한다면, 다음 권의 어떤 기고문은 그 개념을 통째로 조롱하곤 합니다. 자기편의 믿을만한 증거가 없는 상온 핵융합과는 달리, 20-70Hz에서의 뉴런 진동과 동기화된 방전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는, 진동하면서 동기화된 발화가, 하나의 연합체- 하나의 지각체를 대변하는-가 이 우위 경쟁에서 다른 연합체들을 이기도록 도와준다고 데이터를 해석합니다. 그러한 기제는 주의 집중을 하는 동안 특히 중요하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40Hz 진동이 의식을 일으키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현존하는 도구들은 의식의 바탕에 있는 신경망을 탐색하는 데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기생리학적 최신 기술도 수십 억 개의 필질 세포 중에서 겨우 백 개의 뉴런에서 나오는 펄스에밖에 귀 기울일 수 없습니다. 1억분의 1로 희석되는 것이지요. 필요한 것은 바로 뇌 세포 1만이나 10만 개의 활동을 동시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자 : 그러니까 만일 NCC가 세포의 연합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서로 떠들어대는 뉴런 수십 억 개의 아우성 속에서 그것의 존재를 쉽게 놓칠 수도 있겠군요.
코흐 : 바로 그렇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렇게나 선택한 두 세 사람의 일상 대화를 기록해서, 다가오는 대선에 관해 의미 있는 뭔가를 알아내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자 : 그렇군요. 교수님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죠.
코흐 : 이것은 1995년에 나왔고, 우리가 그 시점까지 무시해왔던 의식의 기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의 주요 기능은 유기체로 하여금 많은 우연적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이 자체는 다른 학자들이 제안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것의 신경해부학적 결과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뇌에서 계획을 담당하는 부분은 전두엽에 위치하기 때문에, NCC는 이러한 뇌영역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원숭이에서 밝혀진 바로는, 뇌의 뒤쪽에 있는 1차 시각피질, 즉 V1에 있는 어떤 뉴런도 그것의 출력을 뇌의 앞부분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V1 뉴런만으로는 시지각을 일으킬 수 없고, 시작적 의식에는 더 상위의 피질 영역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보는 일에 정상적인 V1이 필수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눈에서의 신경 활동이 시지각에 대응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 눈의 신경 활동이 시지각에 대응된다면, 시신경이 눈을 떠나는 장소로서 광수용체가 없는 맹점에서는 아무 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회색 점을 보게 될 것입니다 - 뭔가 보이기 위해서 V1 활동은 필수적이지만 불충분합니다. 시각적 상상을 하거나 시각적 꿈을 경험하는 데는 아마도 V1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 저는 교수님이 어째서 이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V1에 NCC가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코흐 : 글쎄요. 만약 사실이라면 - 현재의 증거는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 우리의 가설이 미약하지만 눈에 보이는 진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올바르게 접근했을 때 과학은 의식적 물질적 기초를 밝히는 일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우리의 가설은, 모든 피질 활동이 의식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도 함축하니까요.

기자 : 그래서, 그 넓은 피질 영역들 중에서 NCC는 어디에 있는 건가요?
코흐 : 시각적 의식을 말하는 거라면, 복측의 '지각을 위한 시각' 경로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내측두 피질 내외에 있는 뉴련의 연합체들이, 대상 피질과 전두 피질 세포들에서 나오는 피드백 행동에 의해 지원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반사적 피드백을 거침으로써 그 연합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툼의 흔적을 EEG나 기능성 뇌 영상으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뇌 영역에 대한 이러한 전기생리학적 탐구는 현재 계속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흔히 쓰이는 전략은, 상과 그것에 연관된 지각체의 관계가 일대일이 아닌 시각적 착각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입력이 계속해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은 어떤 때는 이런 방식으로 보고 어떤 때는 저런 방식으로 봅니다. 그러한 쌍안정 지각체 - 네커 입방체가 고전적인 예 - 는 전뇌에 있는 여러가지 신경 세포 형태들 속에서 의식이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이용됩니다.

기자 : 어째서 피질의 감각 영역에서 더 앞쪽으로 회로를 불러들이나요?
코흐 : 제가 방금 말했듯이, 이것은 어떤 유기체의 삶에서 의식이 가지는 중추적인 역할들의 하나, 즉 비의식적 감각운동 작동체들이 처리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우연적 상황들을 위해 계획하는 역할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계획, 사고, 추리를 담당하며, 자아의 자리로서 내 머릿속에 호문쿨르스, 즉 진정한 '나'가 있따는 강력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전두엽을 향해 들어가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투사들일 것입니다. 그 작은 사람 - 호문쿨르스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 - 은 피질의 후방을 관찰하고 있는 피질 전방의 일부입니다. 해부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전대상, 전전두, 전운동 피질들이 후방으로부터 강한 구동성의 시냅스 입력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기자 : 하지만, 그렇다면 그 호문쿨루스 사람의 머릿속에는 누가 들어 있나요? 결국 끝없이 돌고 돌게 되는 것 아닌가요?
코흐 : 호문쿨루스 자체가 의식이 없거나 의식적인 마음에 대해 기능적 역할이 적다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기자 : 호문쿨루스가 자유롭게 행동을 시작할 수 있나요?
코흐 : 의지의 지각과 의지력은 정확하게 구분해야만 합니다. 보세요. 나는 내 손을 올릴 수 있고,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고자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낍니다.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고 몇 초 전까지 이런 행동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통제의 지각, 즉 원작자의 지각 - 내가 지휘하고 있다는 감각 - 은 내가 이러한 행동들을 나의 것으로 분류할 수 있게 해주므로, 나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물론 이러한 원작자의 지각에도 그것만의 NCC가 있을 것입니다). 신경심리학자인 대니얼 웨그너(Daniel Wegner)는, "나는 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낙관주의의 한 형태라고 지적합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비관주의자들은 결코 성취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들을, 자신감과 열의를 가지고 성취하게 해 주지요.

기자 : 그렇지만 교수님이 손을 올리신 것은 전적으로 이전의 사건에 의해서 결정되었나요, 아니면 자유 의지로 된 것인가요?
코흐 : 물리학 법칙이 형이상학적 의미의 자유로운 의지가 들어설 공간을 남겨두었느냐는 뜻인가요? 모든 사람이 이 해묵은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해답은 없습니다. 개인의 행동과 의도 간에 해리가 일어나는 예를 저는 아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사소한 어긋남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튀어나온 바위 털을 기어오르려고 해도 '내가 원해도'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나의 몸뚱이는 거기 따르지 않습니다. 산에서 달리다가 멈추려고 해도 다리가 그냥 계속 가기도 합니다. 최면, 테이블터닝(table turning), 자동기술, 의사소통촉진기법(facilitated communications : 다른 사람이 신체 장애가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저항을 가해 환자가 키보드 상의 올바른 키를 누르도록 유도해서 의사소통하는 방법), 신내림, 군중 속의 몰개성화(흥분 수준이 높아지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감소되어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성을 상실하는 것, 콘서트에서의 괴성이나 발작적 행동 등), 해리성정체장애(소위 다중인격장애)를 포함해서, 실제 행동과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의 해리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형태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올린 것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지크프리트가 신이 만든 세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만큼 진정으로 자유로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 : 교수님의 대답을 종합하자면, 교수님은 어떤 경우든 NCC 탐구는 자유 의지라는 문제와 결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코흐 : 그렇습니다. 자유 의지가 존재하든 않든, 우리는 여전히 감각의 경험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ㅎ바니다.

기자 : NCC의 발견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코흐 : 가장 분명한 것은, NCC의 상태를 추적하는 기술과 같은 실용적인 성격의 것일겁니다. 그러한 의식계(Concioun-ometer)는, 의료진이 미숙아나 영아, 심한 자폐증이나 노인성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 심하게 다쳐서 말하거나 신호를 보낼 수조차 없는 환자들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마취전문의들은 마취 기술을 더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뇌 수준에서 의식의 기초를 이해한다면, 과학자들은 어떤 종들에게 지각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영장류들이 세상을 보고 듣는 경험을 할까요? 아니면 모든 포유류? 모든 다세포 유기체? 이러한 발견은 동물의 권리 논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기자 : 어째서 그렇지요?
코흐 : NCC가 없는 종들은 전형적인 한 묶음의 감각운동 회로들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경험이 없는 좀비들인 거죠. 그러한 유기체들은 어떤 조건 아래서 NCC 를 보이는 동물들보다 보호받지 못할 겁니다.

기자 : 그렇다면 교수님은 아픔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싶지 않으시겠군요?
코흐 :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딸아이 하나는 영아돌연사증후군으로 태어난 지 8주만에 죽었고, 나의 아버지는 파킨슨병에 끝가서는 알츠하이머 질환까지 겹쳐 12년을 허비하셨고, 한 친구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다사다난한 삶을 자기 손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러한 일들과 기타 인간성에 해를 끼치는 신경적 병폐들을 없애려면 동물 실험은 필요합니다. 조심스럽게, 연민을 가지고, 가능하다면 항상 그 동물의 협조를 얻어서 말입니다.

기자 : 윤리나 종교와 관련해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코흐 :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신경과학이 성공적으로 상관관계를 넘어서 인과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신경 활동에서 주관적 지각체로 이어지는 일련의 인과적 사건들, 즉 어떤 기관이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주관적인 느낌을 생성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찾고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이론이, 객관적으로 정의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론적 실체에 의존하지 않고 공식화될 수 있다면,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지한 과학적 노력이 그것의 위대한 마지막 과업을 위해 잠을 깬 것입니다. 인류는 비로서 어떻게 물질로부터 마음이 생겨나는가에 관해 완성된 모양의 정량적 설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자연히 새로운 인간의 개념을 포함하는, 윤리적으로 중요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러한 인간 개념은 모든 남녀가 모든 시대와 문명을 통해 형성해 온 스스로의 전통적인 상에 근본적으로 맞부딪힐 지도 모릅니다.

기자 : 모든 사람이 여기에 매혹되지는 않겠군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성공이, 우주로부터 의미를 빼앗으려는 과학의 무자비한 인간성 말살 욕구가 절망적인 상태에 다다른 것이라고 주장할 텐데요.
코흐 : 하지만 어째서요? 어째서 지식이 내 주변 세계에 대한 나의 존경심을 약화시킨다는 거죠? 나는 당신과 나, 이 책, 우리가 마시는 공기, 우리가 서 있는 지구, 하늘에 있는 별들을 포함해서, 아흔 두 가지 원소들로 만들어진 내가 보고 냄새 맡고 맛보거나 만지는 모든 것에 외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소들은 주기적인 계열로 정리될 수 있고, 차례로 양성자, 중성자, 전자라는 더욱 더 기본적인 3요소로 귀착됩니다. 어떤 비밀스러운 형태의 신비 철학적 지식이 이보다 더 큰 만족을 줍니까? 그리고 이러한 지적인 이해의 어떤 부분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과 사람들, 개와 자연, 책과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람을 한 치도 덜어내지 않습니다.

기자 : 종교는 어떤가요?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이 죽은 후에도 죽지 않고 살아가는 모종의 영혼을 믿고 있는데요. 그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코흐 : 글쎄요. 이러한 믿음들 중 많은 부분은 우리 과학계의 현 시각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의식적 행동이나 의도에는 어떤 물리적 상관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이 끝나면 의식도 끝납니다. 뇌가 없으면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영혼이나 부활, 그리고 신에 대한 어떤 믿음을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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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CIAM] 벌 연구를 통해 본 의식에 대한 생각 - 코흐 2009/01/15 11:50 #

    DNA 발견자 크릭의 동료이자 국내에 [의식의 탐험] 책이 출간되기도 한 코흐 박사의 기사가 SCIAM에 게재되었다. ● 참고 : [interview] 의식의 탐구 번역해서 우리말로 고쳐 쓰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대충 정리해 보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등의 인문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의식은 자기반성(self-reflection) 이나 자기성찰적 사고(introspective thoughts)가 아니라 날 것......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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