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밀레투스의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555년)
3. 밀레투스의 아낙시메네스 (기원전 525년)
: 첫번째 철학자 겸 과학자
4. 사모스의 피타고라스 (기원전 525년)
: 기하학, 수학과 물리 사이의 관계
5. 골로폰의 크세노파네스 (기원전 520년)
: 비판적인 신학 철학자
6.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00년)
7.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 (기원전 480년)
: 변화의 질문에 관심이 있는 엘레아적인 철학자
8. 엘라아의 제논 (기원전 445년)
9. 크라조메네의 아낙사고라스 (기원전 500 ~ 428년)
: 철학자 겸 과학자. 우주론과 물질이론 연구
10. 아크라가스의 엠페도클레스 (기원전 492 ~ 432년)
11. 밀레투스의 레우키포스 (기원전 435년)
12. 아브데라의 데모크리토스 (기원전 410년)
: 첫번째 원소학자
13. 타렌툼의 아르키타스 (기원전 385년)
: 플라톤의 친구이자 후계자
14. 코스의 히포크라테스 (기원전 460 ~ 370년)
: 이상적인 의학의 창조자
15. 에쿠테몬과 메톤 (기원전 430년)
: 계절의 불일치를 발견한 천문학자
16. 소크라테스 (기원전 469 ~ 399년)
17. 플라톤 (기원전 427 ~ 348년)
18.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 ~ 322년)
19. 테오프라스토스 (기원전 371 ~ 386년)
: 삶의 과학에 대해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계자
20. 쿠니도스의 에우독소스 (기원전 365년)
: 향상된 천문학자
21. 키지코스의 칼리푸스 (기우너전 330년)
: 천체 모형
22. 유클리드 (기원전 300년)
: 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조자
23. 아테네의 에피쿠로스 (기원전 3342 ~ 271년)
: 원소 철학자
24. 키티온의 제논 (기원전 335 ~ 263년)
25. 아소스의 클레안테스 (기원전 331 ~ 232년)
26. 솔리의 크리시포스 (기원전 280 ~ 207년)
: 스토아 학파의 창조자
27. 케오스의 에라시스트라토스 (기원전 260년)
28. 칼케돈의 헤로필로스 (기원전 270년)
: 해부학과 생리학의 중요한 업적
29.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 (기원전 287 ~ 212년)
: 수학과 물리 그리고 'Eureka'
30. 키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 (기원전 276 ~ 195년)
: 지구 크기의 추정
31.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 (기원전 262 ~ 190년)
32. 니케아의 히파르코스 (기원전 135년)
: 천문학의 향상
33. 알렉산드리아의 헤론 (기원후 60년)
: 첫번째 미숙한 증기 엔진의 기술
34.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100 ~ 170년)
: 고대의 가장 훌륭한 천문학자
35. 페르가뭄의 갈레노스 (129 ~ 200년)
: 고대의 가장 훌륭한 해부학자 겸 의사
고대의 수많은 문화와 문명이 꽃을 피웠지만 'Science'의 창조는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신화와 변덕스러운 신들로 이루어진 설명을 거부하고, 완전하고 자연스러우며 잘 정돈된 장소인 Cosmos를 생각했다.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하고 실제적으로 '자연'을 발견했고, 그 Cosmos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이론(Theory)'를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이론을 자연의 언어로 나타냈으며, 그 언어들은 신화에서 불가능했던 토론과 개선이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이론에 대한 논의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발전, 개발시켰고 그로 인해 이론들은 빠른 속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져 갔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의 차이점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과학이 고대 그리스인들과 함께 시작된 것일까? 특히 왜 밀레투스인들에 의해서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일까?
늘 그렇듯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없다. 그들은 이전의 그리고 공존하던 다른 문명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흡수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론' 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돈되고 자연스러운 장소로서의 우주(Cosmos)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아마도 상당히 지적이고 관용적인 종교적인 관습이 과학과 철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의 성취는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몇 백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중앙집권적인 종교와 위계적 조직이 없었던 데다가 토론과 그를 통한 개선을 중시했던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삶을 풍족하게 만든 경제적인 기반이 있었다. 이런 풍족함이 세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자연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기하학, 천문학, 의학등의 분야에서 기술적인 기초가 일찍부터 마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둘 사이의 연관성은 잘 개발하지 못했다. '실용' 적인 측면에 상당한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과학과 철학은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우리 세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개념과 그것을 설명할 과학적인 이론적 틀을 개발하여 이전의 신화적인 생각들을 버릴 수 있었지만, 이론적인 면에만 관심을 갖고 실용적인 측면을 천시하고 무시하게 했다. 실험, 관측, 기술의 역할은 육체노동으로 보아 철학자로서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천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수학과 기하학이 강했던 것은 관측과 실험이 필요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공존하던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실용적인 지식들이 합쳐졌다. 천문학 역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관측 데이터들이 있었고, 다행히 천체에 대한 관측은 기품있는 연구로 받아들여져서 수많은 사상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의학에서 많은 업적이 나온 것도 의료업은 당시에도 상당히 경쟁력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역시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로부터 상당한 실용적인 지식이 전해졌고 그를 기반으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가능한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세심한 관찰을 수행했고, 여러가지 가능성 있는 치료를 하고 사용하면서 임상경험을 쌓아나갔다.
헤론의 증기기관은 안타까운 예로서 회전운동을 할 수 있는 기관의 발명은 많은 실용적인 상황에서 힘을 공급할 수 있는 장치로서 발전되지 못하고 유흥거리에 그쳐버렸다. 아마도 노예의 노동력에 기반한 문화적인 배경으로 육체 노동에 대한 것을 치부로 생각하는 귀족 마인드가 문제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과학과 기술의 성과 있는 연결이 관심이 없었다. 굳이 노동을 절약해서 사회의 운명을 개선하고 다시 그를 통해 더욱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약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 과학의 한계였다. 그들은 코스모스의 이해에 수학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어떻게 수학이 자연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는지는 그들에게 분명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수학으로 만들어진 보편성을 가진 '법칙' 이라는 개념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코스모스와 생명 과정에 대해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주 기원론과 우주론에 놀라운 이론들을 많이 만들었지만 중력 개념을 세우지 못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측정과 실험적인 데이터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조직이나 재정이 있을리 만무했고 말이다. 현대의 과학이 17세기 이후 혁명을 맞이하게 된 것은 정밀 장비들의 출현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또 하나, 그들에게는 목적론 이외의 원자론과 기계론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중세 이후 아니 지금까지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그리스의 과학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현대와 같은 자원이 부족했을 뿐, 그들의 설명하고자 한 태도는 지금보다도 더 코스모스라는 이상에 대해 더 많은 유기체적인 개념으로 더 많은 은유를 사용하면서 전일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들은 과학을 탄생 시켰다. 과학의 기본 구조와 비전을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의 세련된 이론을 세워 왔다. 그들이 남긴 물리 세계에 대한 매혹적이고도 풍부한 사상과 주장들은 실제 현대 과학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떠올렸고 앞으로 또 떠올릴 생각들은 아마도 그들의 생각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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